1991년 열사투쟁 30주년 기념사업회에서 오마이뉴스에 1991년 열사투쟁의 과정에서 산화해간 열사를 평전기사를 기획하여 기고하고 있습니다. 열사의 기일에 맞춰 평전기사를 준비하고 기고하고 있습니다.(아래 링크 주소를 클릭하면 원본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.)
"내 아들 죽인 놈 얼굴 한 번 보자" 공권력에 살해당한 명지대생
- 강경대 열사, 1991년 4월 26일
http://omn.kr/1szf3
"더 바보였던 승희는 먼저 떠났고 덜 바보였던 우린..."
- 박승희 열사, 1991년 4월 29일
http://omn.kr/1t0ix
'전태일 형' 부르고 싶었던 영균이... 스무 살로 남았다
- 김영균 열사, 1991년 5월 1일
http://omn.kr/1t0g5
"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?" 끝까지 구호 외친 '경원대 횃불'
- 천세용 열사, 1991년 5월 3일
http://omn.kr/1t2qx
영안실 벽에 구멍 뚫은 경찰, 그의 시신을 강탈했다
- 박창수 열사, 1991년 5월 6일
http://omn.kr/1t4h8
"기설아 왜 죽겠다는 거야?" 김기설 열사와 유서대필 조작사건
- 김기설 열사, 1991년 5월 8일
http://omn.kr/1t5o2
반쯤 불타버린 유서에 "우리는 끝까지 싸우리라"
- 윤용하 열사, 1991년 5월 10일
http://omn.kr/1t7g1
불길 속 고교생의 외침 "왜 로보트 교육 받아야 하나"
- 김철수 열사, 1991년 5월 18일
http://omn.kr/1t9nn
남긴 것도, 갖고 싶은 것도 하나 없이 정의와 평화를 기도한 이정순 열사
- 이정순 열사, 1991년 5월 18일
http://omn.kr/1tase
정상순 열사의 마지막 유언 "아버지 승리의 그날까지 도와주십시오"
- 정상순 열사, 1991년 5월 22일
http://omn.kr/1tbvz
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스물여섯 해 김귀정의 삶과 꿈
- 김귀정 열사, 1991년 5월 25일
http://omn.kr/1tcua
1991년 5월, 분노와 미안함이 뒤섞여 가슴 아렸다
- 피와 눈물의 시간을 되돌아보며
http://omn.kr/1tk8k